무도비즈니스타임즈 안병철 기자 |
체육 현장에서 가장 쉽게 오해되는 단어가 있다. 바로 훈육이다. “아이를 바로잡기 위해서였다”, “강해지려면 이 정도는 견뎌야 한다”, “운동은 원래 엄격해야 한다”. 이 말들은 오랫동안 체벌과 폭력을 정당화해 온 익숙한 문장들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훈육과 폭력은 다르다. 훈육은 아이를 성장시키는 과정이지만, 폭력은 아이를 침묵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훈육은 기준과 방향을 제시하지만, 폭력은 두려움과 상처만을 남긴다.
“맞아서 크는 아이는 없다”
아동폭력은 반드시 주먹과 발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고함, 위협, 공개적인 망신, 비교, 무시, 반복적인 부정적 언어 역시 분명한 폭력이다. 특히 체육관이라는 공간에서는 이러한 행위들이 “지도 방식”이라는 이름으로 쉽게 포장된다. 문제는 아이들이 그것을 폭력으로 인식하지 못한 채 받아들이도록 길들여진다는 점이다. “내가 못해서 혼나는 거야”, “참아야 강해질 수 있어”. 이러한 인식은 아이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자신의 감정과 고통을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로 성장하게 만든다. 더 나아가 폭력을 정상적인 관계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되는 위험한 학습으로 이어진다.

지도자의 감정은 아이가 감당할 몫이 아니다
체육 지도자는 늘 쉽지 않은 환경에 놓여 있다. 운영의 압박, 성과에 대한 기대, 학부모의 요구, 인력 부족.그러나 어떤 이유도 지도자의 감정 폭발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아이가 실수했을 때 필요한 것은 분노가 아니라 설명이고, 느린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체벌이 아니라 기다림이다. 아이를 ‘다루는 대상’이 아니라 배워가는 존재로 바라볼 때 교육은 비로소 시작된다. 엄격함은 필요하다. 하지만 엄격함과 폭력은 결코 같은 단어가 아니다.
체벌은 결과를 만들지 못한다
체벌로 만들어진 성과는 오래가지 않는다. 두려움으로 움직이는 아이는 지도자가 없는 순간 멈춘다. 반면 존중 속에서 자란 아이는 스스로 기준을 세운다. 교육은 통제가 아니라 내면의 기준을 만드는 일이다. 체벌은 아이의 행동을 바꾸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아이의 생각과 가치관까지 바꾸지는 못한다.
이제는 기준을 바꿔야 한다
체육관은 더 이상 “버텨야 하는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아이에게 체육관은 도전해도 안전한 공간, 실수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지도자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
지금 이 말은 아이를 성장시키는 말인가, 상처 주는 말인가
-
이 지도가 교육인가, 감정 해소인가
-
이 방식이 학부모 앞에서도 당당한가
이 질문 앞에서 망설여진다면, 이미 멈춰야 할 신호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힘이 아니라 태도다
무술과 체육은 아이를 강하게 만드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강함은 폭력 위에 세워질 수 없다. 아이를 존중하는 지도, 아이의 감정을 보호하는 교육, 그리고 아이의 내일을 먼저 생각하는 태도. 이것이 지금 우리가 다시 세워야 할 기준이다. 체벌을 내려놓을 때, 지도자는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교육자가 된다.
#이제는달라져야한다 #사설 #체벌근절 #아동폭력예방 #태권도교육 #체육윤리 #지도자책임 #훈육의본질 #아이존중 #아동인권 #교육자의태도 #폭력없는도장 #안전한체육관 #체육교육 #인성교육 #지도방식 #감정노동 #교육칼럼 #현장사설 #체육계자정 #아이중심교육 #지도자윤리 #도장문화 #청소년보호 #체육현실 #신뢰회복 #교육의힘 #아이의내일 #체육지도 #존중의교육
















